피카소의 그림을 접해 보신 분은 누구나 한번 쯤 이런 생각을 해 보셨을 것입니다.
‘에이, 이따위 그림은 나라도 그리겠네......’
‘유명한 화가 그림이니까 그렇지, 내가 그렸다면 그림 취급이나 받겠어?’
사실 이 글을 쓰는 저도 학생 시절에는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지금은 어떠냐고요? 조금 다른 의미로 그 정도는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방지다고 생각하셔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삼류 화가라도 그런 자신감이 없다면 당장 붓을 꺾어버려야지요.
아무튼 피카소의 요상 야릇한 그림은 일반인에게나 그림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에게나 여러 가지 생각을 갖게 합니다.

<페르낭드의 초상> 피카소Pable Ruiz Picasso 1909 뒤셀도르프 미술관 -색감이나 필법에서 세잔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피카소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잔은 피카소의 그림 아버지뻘 되는 사람입니다. 세잔 이전의 서양화가들은 사물의 겉모습을 재현해내는데 온 정신을 다 쏟았습니다. 인상파 화가들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인상파 화가들은 햇빛이 물체에 반사되어 눈에 들어오는 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햇빛의 스펙트럼처럼 일곱 가지 색만을 주로 사용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정확하게 포착하기 위해 재빨리 그림을 완성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인상파 그림 중에 풍경화가 유달리 많은 것도 햇빛을 직접 관찰하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상파 화가들을 눈은 있되 뇌가 없는 사람으로 비웃은 사람들이 이른바 후기 인상파라는 세잔, 고흐, 고갱입니다.
그중에서도 세잔은 사물의 본질적인 모습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햇빛에 반사되는 겉껍데기가 아닌 사물의 본래 모습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에 모든 정력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물체를 원기둥, 원통, 삼각뿔 따위의 입체로 바꾸어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세잔의 그림에 나타난 사물은 마치 여러 가지 입체 모형을 쌓아 만든 탑처럼 보입니다. 피카소의 이상한 그림은 바로 이런 세잔의 영향을 받아 태어났습니다.

<에스타크의 바다> 세잔 Paul Cezanne 1879 파리피카소미술관 -집들의 모양이 마치 입방체를 쌓아 놓은 것 같습니다.
피카소는 어릴 적부터, 그림의 천재로 유명했습니다. 그에 대한 자부심도 남달랐습니다. 그의 잘난 척을 들어 보겠습니다.
‘나는 어린 아이의 그림을 그려본 적이 한번도 없다. 열두 살 때 이미 라파엘로처럼 그림을 그렸다.’
제가 봐도 그의 어린 시절 그림솜씨는 지금 우리나라의 웬만한 미대생들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그가 바르셀로나에 있는 미술대학에 입학한 것은 겨우 열네 살 때의 일입니다. 그 곳에 재직 중이던 아버지의 고집을 이기지 못해 입학시험 자격을 주었던 심사위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일반적으로 한달의 기간을 주고 완성해야했던 시험과제를 어린 꼬맹이가 단 하루 만에 그것도 완벽한 솜씨로 마무리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런 피카소도 미술대학 시험에 내내 낙방하던 열등생 세잔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니 세상 일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세잔에 대해 아느냐고요? 그분은 나의 유일한 스승님이십니다. 나는 몇 년 동안이나 그분의 그림을 연구했습니다.’

<맨발의 소녀> 피카소 1895 파리피카소미술관-피카소의 14세 때 그림입니다. 전통적인 기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인물의 감정 표현등 원숙한 화가의 모습이 보입니다.
사실 일반적인 그림은 물체의 한 쪽 부분만을 그린 것입니다. 미인의 얼굴을 그릴라 치면 뒤통수를 그릴 수 없고, 뒤통수를 그리려 하면 얼굴을 그릴 수 없습니다. 피카소는 모나리자처럼 한 쪽만 그려진 그림은 미인은 고사하고, 사람의 모습도 제대로 그리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생각한 방법은 대상을 잘라서 펼쳐놓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지구 껍데기를 벗겨서 조각조각 펼쳐놓은 세계지도가 땅과 바다의 모습을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 나오는 미녀는 눈은 앞이, 코는 옆이, 가슴은 앞이, 발은 밑바닥이 보이는 이상한 모습을 띄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뭐가 대단해서 난리냐고요?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도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물의 외관을 재현하는 수준에서 벗어난 것은 예술이 예술을 위한 순수한 예술의 시대로 접어드는 의미를 지닙니다. 유식한 말로하면 비로소 예술가가 스스로 자율성을 얻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술에 있어서는 커다란 사건입니다. 아니 진정한 의미로는, 이때가 되서야 비로소 예술이 탄생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많은 학자들이 순수예술의 탄생 시점을 인상파로 보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피카소 만큼의 완전한 자율성을 얻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이렇게 자율성을 얻는 데는 사진의 발명도 한 몫을 했습니다. 셔터 한 번만 누르면 어떤 화가보다도 정확하게 대상을 재현해내는데, 화가들이 배겨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스스로를 보전할 자구책의 한 방편이 예술을 위한 예술이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항들을 머리에 넣고 피카소의 그림을 보시면, 이제는 조금 덜 이상해 보이실 겁니다. 그리고 ‘이따위 그림 나도 그리겠다.’는 이야기는 쏙 빼시고 연인이나 아이들에게 멋진 설명을 붙여주십시오. 아마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시선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 울고 있는 여인> 피카소Pable Ruiz Picasso 1937 파리피카소미술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