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 Marc Chagall(1887~1985)
혼(魂)의 고향(故鄕)을 찾는 색채(色彩)의 대교향곡
피카소와 더불어 입체파 화가들이 서커스에 흥미 갖고, 그런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긴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샤갈도 서커스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이 그림을 그린 전년경 부터 인데, 그는 후일 마술적인 세계, 고도의 포에지의 형(形)으로서 서커스에 자신이 끌렸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나의 회화도, 언어도 결코 서커스의 정확함에는 미치지 못한 다."라고도 말하고 있듯이, 역시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매력의 정체는 정확함에 있다. 발레리가 말한 '댄스와 같은 정확함'은, 후일 원숙기에 전쟁, 혁명, 성서적 광경 등을 그린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묵시록 적인 혼돈과 거리가 멀다. 아크로바트의 정확도를 나타내기 위하여 화면에 대담하게 인물을 배치하고, 큐비즘 분석의 정도(精度)와 결합된 호사하고 장식적인 화면을 만들고 있다.
"나는 다른 어떤 사람들처럼도 되고 싶지 않다. 새로운 세계를 보고 싶다.... 고향이여, 너는 에크스(세잔이 태난 고장)의 일을, 귀를 자른 화가의 일을, 큐빅(立體), 4각, 파리의 일을 들었느냐? 비테부스크여, 나는 너를 두고 간다." 자서전 '나의 생애'에 결별사를 놓고 파리에 다시 온 샤갈 이었으나, 프랑스의 자연미를 알게 됨에 따라 다시 살아나는 것은 고향의 산하였다. 이 작품은 1925년의 여름을 몽쇼베에서 지내면서 아름다운 그 풍광에 자신도 모르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 것이리라. 말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농부와 말의 정다운 관계, 그리고 멀리 보이는 주막, 그 주막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담소하는 사람들, 마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 춤을 추는 남녀 등, 꿈결 같은 그리움이 맑게 흐르는 기억의 샘물같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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