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다간다 벼르고만 있다가 주말에 성남아트센터에 갔다. 관람료는 성인이 6000원이고 학생이 4000원이었는데 나는 관람료를 내자마자 바로 6000원을 거슬러 주었다. 내, 내가... 이 내가 "학생"으로 보였다는 것인가!!(두둥) 역시 나는 동안이었다(?)는 기쁨을 억누르며 천천히 관람을 시작하러 들어간 그 순간, 마침 큐레이터가 작품 설명을 하고 있었다. 큐레이터를 따라 이것저것 설명을 들으면서 관람을 시작했다. 큐레이터분이 이런저런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면서 각 작품을 감상했는데 솔직히 놀랍긴 했지만 그닥 내 취향에 맞는 작품들이 없어서 완전 흥미롭진 않았다.
단순한 극사실화를 그리는 법은 의외로 단순한 데 있었는지도 모른다. 섬세한 세부묘사와 음영과 명암을 통한 광선의 처리만 있어도 극사실화로 보이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말하기는 쉽지만 정작 그리자면 힘들다는 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겠지만. 남녀가 키스하는 그림에서 작은 솜털과(남자의 굵은 털만 묘사됐다면 그렇게 놀라지 않았겠지만 여자들에게도 있는 가느다란 솜털도 묘사됐다.) 입술의 작은 주름. 탐스러운 포도가 가득한 그림폭 속에서 물기에 젖어 빛나는 포도 껍질에 비친 갈색 꼭지. 종이를 접어 만든 3차원물인 것처럼 보이는 2차원 회화 위의 명암과 음영. 햇살을 가득 머금어 영롱한 빛을 사방으로 뿌리는, 유리잔에 맺힌 물방울까지도. 놓치기 쉬운 작은 것까지도 놀라운 관찰력으로 잡아내어 표현하는 화가들의 눈은 정말 하늘이 내려주신 보배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감(五感)에 약한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일인 것처럼 보였다.
현대에 와서 사진 기술이 발달하여 '현실의 완벽한 모사'라는 면에서 회화는 사진에게 그 자리를 내줘야 했다. 그냥 이 그림들이 현실을 그대로 모사하기만 했었다면 사진의 그림자에 가려진, 평범한 사실주의 회화와 다를 것이 없을 듯하다. 그러나 전시회의 그림들은 다른 방식을 모색했다. 단순한 사진이라기보다는 복잡한 합성사진 같은 모습들을 드러내는 그림들은 나에게 한 가지 작은 깨달음을 주었다. 사진이든 회화든 어떤 장면을 포착하여 그것을 마음 속에서 재구성하는 작업은 인간의 손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모사하려면 전방위에서 초고화질 카메라로 24시간 녹화해야 정확한 객관성을 갖출 수 있다. 인간은 그 많은 것들 가운데서 특정한 시간의 특정한 사물의 상태나 특정한 현상을 잡아내어 표현한다. 취사선택이라는 말은 어떻게든 벗어날 수 없는 주관성의 발로다. 휘발성이 강한 기억력을 가진 인간이 육안으로 관찰하는 사물의 모습은 오히려 사진이나 정밀한 회화만 못한, 더욱 주관적인 광경들이다.
다만 일단 취사선택되어 그림의 구도 속으로 들어가면, 그것들은 실재과 혼동될 정도로 지독하게 현실을 복제한다. 틀까지는 나라는 주관이 존재했지만 작은 세부에서부터는 철저히 나를 지우고 현실에 천착한다.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되는 그림들은 놀랍게도 빛에 노출된 화학물질들로 이뤄지지 않았다. 반대로 요새는 오히려 사진이 회화보다 더 많은 변형과 조합을 쓰는 듯 하다.


[이것들이 과연 현실에 있을 법한 사진인가?]
그런데 사진도 아니고 무려 회화에서 이렇게 사물을 필사적으로 모사하는 것은 왜일까? 바로 -나-라는 틀 속에서 무엇보다 정확하게 실재를 꿰뚫어 보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매일 보는 일상의 장면들도 두루뭉술하게 넘겨버리는 인간에게, 극사실주의화는 전시회의 부제처럼 "또 하나의 일상"으로 다가오리라 생각한다.
전시 일정 : 8월 27일(木) 까지(단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 성남아트센터 미술관 본관(지하철 분당선 이매역 도보 10분 거리)
예매처 : 현장 관람권 발급 가능, 인터파크에서 예매 가능
관람요금 : 일반인 6000원, 학생 4000원 기타 요금은 성남아트센터 홈페이지 참조